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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유랑하다

서른셋. 엄마와 첫 해외여행은 마음이 간지러웠다. (1편)

by 생활리뷰 싹피디 2020.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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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의 9개월의 세계여행은 2020년 1월 31일 끝났다.

여행이 끝나갈 즈음 아내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

 

"여보, 여행 끝나고 도련님 결혼식(2월 8일) 끝나면 어머님 아버님 모시고 여행 한번 갔다오는게 어떨까?"

 

이미 많은 돈을 썼고 우리집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는 걸 빤히 알고 있던 터라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참고로 우리집 돈은 아내가 관리를 한다. 9개월의 세계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도 아내의 알뜰한 살림 덕분이었는데 여행이 끝날 무렵의 아내 제안은 마음이 미안해졌다. 그리고 나는 어떤 돈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갈 심산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가 결혼할때 아내에게 명품가방 하나 사라고 준 돈. 그 돈이었다. 여행끝나면 꼭 가방 사겠다고 말하던 아내였다. 그런데 그 돈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자고 한다. 마음이 찡 울렸다. 

 

사실 엄마는 몇해 전, 대학교에서 교육을 하던 곳에서 같이 강의를 수료한 분들과 해외여행을 갔다. 그것이 엄마의 생애 첫 해외여했이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불쾌한 일들이 일어났고 엄마는 마음이 온통 상해 행복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나는 그 이야기를 엄마에게 직접 듣고 속상했다. 내가 몸과 마음으로 부딪쳐 느낀 해외여행은, 9달의 해외여행은 설레고 기쁨으로 충만하고 감동의 연속이었던 그런 것인데 엄마는 몇몇 빌어먹을 인간들 때문에 불행을 느끼고 왔다니... 이상하게 그 일은 나에게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아내의 제안을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엄마에게 여행의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던 철부지 남편, 효자코스프레를 하고 싶던 나의 마음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코로나 소식이 막 들려올 때쯤, 아직 세계로 퍼져나가기 전! (동생도 2월 초에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그때는 코로나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이판으로 떠났다. 멤버는 엄마, 아버지, 여동생, 아내, 나. 이렇게 다섯이었다. 여동생도 생애 첫 해외여행을 이번에 가게 되었다. 

 

목적지는 사이판의 켄싱턴 호텔. 나름 사이판에서는 가장 좋은 호텔로 여행객들에게 정평이 나 있었다. 그만큼 가격도 제일 비쌌다. PIC 리조트가 다음 대안이었는데 그곳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천국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이들이 뛰노는 그런 곳에 우리가 가서 뭔 재미를 느끼겠는가. 무엇보다 음식의 퀄리티가 넘사벽이라는 이야기를 블로그 같은데서 많이 들었다. 가격은 100만원 이상 차이가 났다. 한번 모시는거 최대한 고급스럽게 모시자라는 마인드로 아내는 6백만원 정도의 금액을 결제했다. 지금 생각해도 후덜덜한 돈이다. 6백만원은 3박4일의 켄싱턴 호텔 룸 2개, 비행기삯, 투어비용, 픽업서비스 등의 가격을 다 포함한 예산이다. 

 

사이판의 야자수. 하늘이 참 파랗네.

사이판에 내리자 이국적인 야자수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살짝은 설레 보이는 부모님의 모습. 사실 사이판은 시내나 리조트를 가는 길이 예쁘지 않다. 점포들도 다 낡은 느낌이어서 나는 내심 걱정이 됐다. 하지만 20분 정도 길을 달려 마주한 켄싱턴 호텔을 보는 순간, 탄성이 나왔다. '바로 이거지!'

 

노을이 질려고 하는 켄싱턴 호텔 수영장과 해변의 모습. 숙소에서 바라본 뷰다. 참 멋지다.

고급스러운 리조트의 모습이 우리 일행을 반겼다. 직원들은 웰컴드링크를 가져오고 엄마와 아버지는 리조트 주변을 훑느라 정신이 없었다. 키를 받아들고 숙소로 올라갔다. 8층에 위치한 방은 옆에 나란히 붙어있었다. 방문을 열자 마주 보이는 창 밖으로 수평선의 바다가 쫙 펼쳐져 있었다. 방 컨디션과 오션 뷰를 엄마가 너무 좋아했다. 

 

'오기 정말 잘했구나.'

 

효도가 돈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돈이 있으면 더 멋진 효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여행으로 우리 부부의 통장 잔고는 0원이 되었지만 그만큼 행복하게 이 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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