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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피디의 시선과 생각

외주제작PD를 직업으로 선택한, 선택할 당신에게 전하는 이야기 1

by 생활리뷰 싹피디 2020.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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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외주제작사 출신 PD. 

 

2012년 4월. 대학교 4학년 졸업을 마치기 전, 나는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외주제작사로 입사했다.

방송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청년에게 지상파3사와 외주제작사의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외주제작사를 처음 들어가면 '조연출'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업무를 배운다.

대학교에서 난다긴다 하는 영상쟁이도 우선 일을 배우기 시작하면 어리버리할 수밖에 없다.

외주로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방식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숙련도가 쌓일때까지는 최소 3개월이 걸린다.

 

처음 나의 PD님은 여자분이었는데 엄청나게 까칠한 사람이었다.

모든 PD가 그런줄 알았다. 예고편을 만드는데 13번을 빠꾸를 맞았다. 

독설과 함께 사소한 개인 심부름도 시키는 패악질을 선보였다. 

차후 짬밥이 차고, 이 바닥의 생리에 대해 알게 되고 그 선배가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처음 받은 월급은 100만원. 최저 시급의 계산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일이 너무 재밌었고 그 100만원도 월급을 받는 날이면 동기들과 술을 마시느라 아껴서 썼다.

행복했다.

 

조연출로 배우는 업무는 PD를 보조하는 것, 그리고 카메라를 조금 다뤄보고 PD가 시키는 편집을 해보는 것이었다.

이때도 실력이 늘지만 PD가 될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없다. 조연출의 눈과 PD의 눈은 확실히 다르다.

조연출과 PD의 차이는 프로그램에 대한 책임감이다.

 

프로그램이 망하면 PD가 책임이 진다. 

프로그램이 잘되도 PD가 책임을 진다. 

 

그래서 조연출과 PD는 다르다. 

 

나는 2년 3개월을 기다렸다. 그리고 새로 제작되는 종편의 한 프로그램에서 입봉을 하게 되었다.

입봉은 조연출이 PD가 되는 것을 뜻한다. 일본어 같은 이 용어를 아직도 방송계에서 사용한다.

모든 조연출의 꿈은 입봉이다. 그리고 그 꿈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다.

 

입봉작을 망치면 어떡하지라는 엄청난 불안감.

카메라를 든 손이 벌벌 떨리고 편집도 머리를 싸매고 해야 하는 입봉작.

 

그 고비만 벗어나면 이제 가까스로 PD라는 타이틀을 달고 방송이라는 거침없는 세계에 한발 내딛는 것이다.

동경했던 선배 PD를 이제 PD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선배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위치가 됐다.

 

PD는 PD의 경쟁자다. 이제는 조수가 아니라 당당히 실력을 경쟁해야 한다.

 

나의 첫 입봉작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팀장에게 칭찬을 받았는지 꾸지람을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벌벌 떨리는 몸과 마음을 붙잡고 카메라를 잡았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정신없이 잡았던 기억만, 그 흔적만 남아있다.

 

그렇게 나는 외주제작PD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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